민우소식지
[민우통신문 2024-2호] 초보 성교육 강사이야기-2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08-28
- 조회 수
- 99 회
초보 성교육강사 이야기 2 : 표준교육안이 필요해
광주여성민우회의 지향을 담은 표준성교육안은 기존 강사들에게는 현재의 수업을 돌아보며 수업의 방향성을 재점검하는 지침으로, 초보 성교육강사들은 앞으로 자신이 어떤 수업을 하게 될지 알 수 있는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무도(광주여성민우회 회원, 성교육강사)
작년에 성교육 전문강사 양성과정을 마치고 성교육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일단 수업을 하게 되면 ‘초보’라는 것을 들키지 않아야 하므로 수업을 준비할 때마다 떨린다. 성교육 전문강사 양성과정에서는 수업에서 주로 하는 ‘실무적인’ 내용보다는 성교육강사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 소양인 성인지 감수성을 키우는 것, 우리나라 성인식의 변화와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성교육에서 많이 쓰이는 용어들의 정의와 맥락 등을 주제로 공부하게 된다.
실제 수업의 주제와 범위는 초보 강사로서는 완벽히 새로운 영역이다. 막 성교육강사 자격을 갖춘 입장에서는 실무연수 없이 바로 실무에 투입되어야 하는 부담감을 느끼게 된다. 양성과정 안에서 민우회 성교육강사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감각을 익혔다면 실제 수업에서 다루는 주제를 어떤 방향으로 어디까지 이야기하고 수업을 이끌어가야 하는가에 대한 개괄적인 교안과 지침이 마련되어 실제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위 내용에 대해 함께 공부해 보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있다면 좀 더 자신 있게 수업에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힐 수 있겠지만 어떤 정보도 없는 처지에서는 참여 의사를 밝히기 꺼려진다. 게다가 나처럼 파워포인트 프로그램 사용에 미숙한 경우는 더 그랬다.
첫 수업을 맡고 난 후 교안의 내용을 어찌 만들어야 할지 난감했던 나는 교육센터 담당자인 수수에게 요청하여 교안을 받아 나름대로 업데이트를 했고, 다른 분들은 자신을 성교육강사로 이끈 선배의 도움을 받거나, 이미 다른 곳에서 성교육 전문강사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불안하지 않게 첫 수업을 준비했다. 첫 수업을 하게 된 8기 강사들은 수업 전 시연의 기회를 한 번 더 얻었고 그 과정에서 내가 만들지 않은 시안에 사용된 자료가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 쓰였는지를 해독하느라 교안을 만든 담당자에게 왜 그 사진이 쓰였는지 확인하고 시연 과정에서는 형량에 대한 자세한 정보도 될 수 있으면 안내하지 않는 편이 좋다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한 번의 시연으로 성교육 전문강사 과정을 통과하고 또 한 번의 시연을 통해 첫 수업 대비를 한 후 나는 성교육 전문강사로서 ‘초보’ 딱지를 숨긴 채 학생들 앞에 섰다. 처음부터 완벽할 수는 없지만 좀 더 준비된 상태로 성교육강사로서 교단에 설 수 있기를 바랐다. 내가 기대했던 성교육강사 모임(이하 성강모)은 실제 성교육 현장의 이모저모라던가 성교육 수업의 노하우를 주고받는 것이리라 기대했으나 책 한 권을 읽으며 발제, 토론을 이어가는 방식이었다. 우리 8기가 성강모에 합류하기 전에 실제 수업에서 적용하게 되는 포괄적 성교육에 관한 공부가 이전 연도에 끝났다니 더욱 아쉬웠다.
현재 광주여성민우회 성교육은 주로 중,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주제는 경계와 동의, 사춘기의 몸, 데이트 폭력, 연애, 디지털 성폭력 예방 교육 등이다. 이제 막 성교육강사가 된 초보 강사들에게 이런 내용은 개별적으로 공부하고 준비할 사항일 뿐이다. 가끔 일반적인 교육현장이 아닌 대안학교 등으로 갈 때는 새로운 프로그램 구상을 함께하고 교안을 미리 만들어 점검해 보는 시간을 갖기도 하지만 모든 학교를 그렇게 준비하지는 않는다. 수업을 끝내고 망했구나 싶은 날이면 내가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만든 수업자료를 의심하게 된다. 그런 자괴감이 들던 날 함께 차를 타고 오던 동료 강사에게 망한 수업 이야기를 하며
"선생님들은 매번 어떻게 그 많은 수업 들을 진행할까요?" 했더니 "그분들은 교과서가 있잖아요!"
그러게. 우리에게도 교과서가 있다면 좀 더 안정적인 수업이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준교육안은 첫째, 민우회의 지향을 담은 교육자료의 총체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둘째, 수업 진행이 막막한 초보 성교육강사가 수업의 방향성을 잡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셋째, 이미 활동하고 있는 강사들도 각자의 수업자료를 따로 준비하는 게 가끔은 부담스럽고 민우회 전체 교육의 질을 담보하기 어렵지 않을까 싶은 우려를 하고 있었는데 이 부분이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을 것 같다. 넷째, 갑자기 대타로 투입된 강사들에게도 요긴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사실 2024년 성강모를 시작할 때 제안하고 싶었다. 광주여성민우회 표준교육안을 만들면 좋겠다고. 전반기에는 제안할 기회를 놓쳤지만, 전반기 평가할 때 솔직히 의견을 개진했고 여름방학 동안 상반기 각자가 어떤 주제로 교육했고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점검하고 하반기에 교육하고 싶은 주제도 고민해서 나누자는 성강모 방학 숙제가 주어졌다. 하반기 동안 민우회 성강모 집단지성의 힘으로 민우회의 지향을 담은 표준교육안이 생겼으면 좋겠다. 광주여성민우회의 지향을 담은 표준성교육안은 기존 강사들에게는 현재의 수업을 돌아보며 수업의 방향성을 재점검하는 지침으로, 초보 성교육강사들은 앞으로 자신이 어떤 수업을 하게 될지 알 수 있는 좋은 길라잡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