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회견] 대법원은 광주연극계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의 생존방식을 피해 부정의 근거로 삼은 원심판결을 파기하라!
[기자회견] 대법원은 광주연극계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의 생존방식을 피해 부정의 근거로 삼은 원심판결을 파기하라!2026년 7월 23일, 광주연극계성폭력사건해결대책위원회는 대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이 사건은 연극계에 막 진입한 만 19세의 사회초년생 피해자를 대상으로, 광주 연극계에서 극단 대표·연출가·배우·예술교육자로 활동하며 영향력을 행사하던 피고인들이 우월적 지위와 권력관계를 이용해 반복적으로 강제추행, 강간, 준강간 등 성폭력을 저지른 권력형 성폭력 사건입니다.광주고등법원 항소심은 피해자가 피해 이후에도 연극 활동을 이어간 점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가 뒤늦게 진단 된 점 등을 근거로, 1심에서 인정한 반복된 성폭력과 PTSD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부정했습니다.대책위는 한 사람의 생존 방식을 피해 부정의 근거로 삼은 항소심 판결을 비판하고, 대법원이 성폭력 피해의 현실과 지역 예술계의 권력구조를 반영한 정의로운 판단을 내려줄 것을 촉구했습니다. 기자회견에서는 성폭력 피해 이후에도 자신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노력했던 피해자의 경험과 지역 예술계 내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연대의 목소리가 이어졌습니다. 아래에 당사자 발언과 연대발언, 기자회견문 일부를 공유합니다.[피해당사자 발언] 재판부는 피해 이후 제가 연극을 지속한 것을 두고, 가해자와 “수년에 걸쳐 접촉했지만 그 과정에서 증상이 문제 될 정도로 관찰된 적이 없었다”고 판단했습니다. 지역 연극계는 좁고, 가해자를 피하고 싶어도 완전히 피할 수 없는 구조입니다. 가해자 공연의 스태프로 참여했던 것도 피해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제 꿈을 지키고 제 삶을 계속 살아가기 위해 감당해야 했던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항소심은 제가 무너지지 않고 살아내기 위해 했던 선택들을 오히려 피해가 없었다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저는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다시 의심받았습니다. 저에게 이 싸움은 십여 년 전 피해의 현장에 갇혀 있는 저를 구하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고소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은, 상처를 안고도 제 삶을 살아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항소심 재판부는 제가 고소 요건을 알아보며 이야기한 녹취를 근거로, 마치 제가 진단서를 꾸며낸 것처럼 판단했습니다. 고소를 결심하고 나서 법률지식이 전혀 없던 저는, 제가 당한 일이 어떠한 범죄인지 법의 시선에서 알아야 했습니다. 그것마저 피해당사자를 의심하는 근거가 된다면, 피해자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무력하게 있어야만 한다는 뜻입니까?[연대발언 1] 이산 (배우, 성평등교육 활동가)공연 기회에 대한 간절함이 신체적, 정신적 한계를 기꺼이 뛰어넘게 하고, 이룬 것보다는 부족한 면에 집중하며 스스로에 대한 비난을 합리화한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고, 또 목격했습니다. 유명해진 예술인들의 성공담에서는 이러한 취약함이 열정으로, 예술의 자양분으로 미화되곤 합니다.예술 진흥을 위한다는 정부의 정책조차 예술적 성취가 가져오는 경제적 성과에 혈안이 되어 신진 예술인의 취약함을 이용하는 폭력과 착취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며 방치합니다. 제도화된 시스템 안에 있는 예술인에게 기회와 자원이 집중되고, 이 시스템 안에 남성이, 이성애자가, 비장애인이 더 쉽게 진입하는 불평등은 소수의 성공과 각자 도생의 문화 뒤에 몸을 숨깁니다. 저는 법이 더이상 약자를 약자라는 이유만으로 의심하고, 강자를 강자라는 이유만으로 신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가해자의 주장이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되고, 피해자가 경험하지 않고 꾸며냈다고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진술이, 피해 당시의 감각과 이에 대한 반응과 앞뒤 정황에 대한 기억이 피해자의 입장을 바탕으로 일관된 맥락을 구성하고 있음에도 무가치하게 버려지는 상황이 더는 반복되지 않아야 합니다.[연대발언 2] 정윤희 ( <블랙리스트 이후> 총괄디렉터)2018년 문화예술계 미투를 필두로 한국 사회는 성폭력 대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왔습니다. 재판부는 퇴행적 판결을 멈추고 22년에 제정된 예술인권리보장법을 근거로 성폭력 가해자를 엄중 처벌하십시오.예술인권리보장법 제18조(성평등한 예술환경의 조성)는 ①항 예술인은 예술 활동에 있어 성별에 따른 차별, 편견, 비하, 폭력 없이 인권을 동등하게 보장받고 성희롱ㆍ성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②항 예술인은 예술 활동 또는 예술교육활동과 관련하여 다른 사람에게 성희롱 또는 성폭력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를 적시하고 있습니다.지역인구소멸 시대에 지역에서 정주하며 미래를 그리던 청년예술인이 같은 지역 예술계에서 권력과 지위가 있는 가해자에게 당하는 폭력은 일회성이 아닙니다. 성폭력 가해자가 버젓이 권력을 누리며 활개를 치는 지역 예술계에서 누가, 어떻게 미래를 그릴 수 있을까요.[연대발언 3] 김지은 (피해생존자 ·『김지은입니다』저자)성폭력을 고발하고 아홉 번째 여름을 지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4월 끝난 줄 알았던 재판은 다시 이어졌고, 아직 일상과 건강을 온전히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법원에 오는 일도, 제 목소리를 내는 일도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광주연극계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와 그 시간을 함께 견뎌온 연대자들께 힘을 보태고자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 섰습니다김산하 님을 처음 만난 곳은 다른 연극계 성폭력 사건에 연대하러 갔던 수원지방법원이었습니다. 자신도 힘겨운 가운데 다른 피해자의 곁에 있었고, 제게도 따뜻한 마음을 건넸습니다. 이후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산을 걸으며 법정 밖의 평범한 일상을 나누었습니다. 산하 님의 글을 읽으며 아직 보지 못한 무대를 떠올렸습니다. 피해를 고발한 뒤 수년째 연극을 이어가지 못하는 현실이 아팠습니다. 언젠가 그 무대를 꼭 보고 싶습니다.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용감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피해를 말한 뒤에도 자신의 일상을 잃지 않는 사회입니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8년 전 외쳤던 이 문장이 더 이상 구호에 머물지 않기를 바랍니다.피해자가 다시 자기 이름으로 일하고, 연극을 만들고, 사랑했던 공간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연대자들이 지켜온 정의에 이제 법이 응답해야 합니다.[기자회견문] 이에 우리는 대법원에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첫째, 반복된 성폭력과 외상후 스트레스장애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판단할 때 진단 시기나 다른 외상 경험만이 아니라, 피고인의 범행이 피해의 발생과 악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는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라.둘째, 강간죄와 준강간죄를 판단할 때 피해자가 처한 위계적 관계와 범행 당시의 전체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라.셋째, 피해자의 삶을 피해 부정의 근거로 삼고 증거와 법리를 오해한 광주고등법원 판결을 파기하라.이 사건은 한 피해자의 고통만을 판단하는 사건이 아니다.성폭력 피해 이후에도 일하고, 사람을 만나고, 꿈을 포기하지 않으려 했던 피해자의 일상을 피해 부정의 근거로 삼을 것인지에 관한 문제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고통을 직면하고 치료를 시작한 피해자에게도 사법적 구제의 길이 열려 있는지에 관한 문제이다.피해자가 자신의 고통을 증명하기 위해 삶 전체를 끝없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살아남기 위해 이어간 일상과 치료가 오히려 피해를 의심하는 근거가 되지 않는 사회, 예술을 꿈꾼다는 이유로 폭력을 감내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향한 대법원의 정의로운 판단을 촉구한다.이날 기자회견에는 광주연극계성폭력사건해결대책위원회를 비롯해 공연예술인노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회, 블랙리스트 이후,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서울인천권역 대표, 페미씨어터, 한국여성민우회 등 단체와 광주연극계성폭력사건 피해자를 지지하는 시민들이 함께했습니다.또한 대법원 상고심에서 원심판결 파기를 촉구하는 탄원서에는 개인·단체 연명 493건, 연대의 한마디 241건이 모이며 많은 시민들의 지지와 연대가 이어졌습니다.광주연극계 성폭력 사건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함께해주신 모든 연대자와 시민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기자회견문 전문 읽기: https://buly.kr/31Vfqw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