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소식지
[민우통신문 2024-2호] 직장내 성폭력 2차피해자가 전하는 이야기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08-28
- 조회 수
- 182 회
직장내성희롱 2차 가해 기고문
직장 내 성희롱(강제추행)보다 2차 가해가 더 힘들었습니다.
그들은 제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고서야 태도가 바뀌었습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비슷한 일을 겪은 피해자들에게는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과 2차 가해에 대한 우리나라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기쁨이(성폭력상담소 내담자)
2024년 6월, 2심에서 강제추행이 1심과 같이 유죄 확정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현재 상대방은 2심 판결문을 근거로 직장에서 해고가 된 상태입니다. 지금은 처음 사건이 있었던 후 2년이 지난 시점입니다. 첫해 1년 동안은 정말 힘들었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해보면 제가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어요”
라고 말하곤 합니다.
2심 판결이 나오고 제 마음은 오히려 편안해졌습니다. 하지만 한 번씩 저에게 억울함, 무기력증이 찾아오면 이것은 저에겐 끝나지 않은, 계속 함께 가야 할 감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게 된 이유는, 저와 같은 피해를 겪은 피해자분들에게 저의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위로를 줬으면 하는 마음과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으면, 또 이런 일을 겪게 되는 피해자가 계속 피해를 받는 우리나라의 분위기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2년 전 저는 회식 후 저를 따라온 직장상사에 의해 강제추행을 당했습니다. 이 사람이 술을 먹으면 돌변한다는 것을 몇 번의 술자리에서 알고 있었고, 이런 추태를 부린 게 처음이 아니었었습니다. 만약 상대가 진정성 있는 사과를 했다면 이해하려고 했습니다. 사실 제가 이 일에서 힘들었던 건 2차 가해 때문이었습니다. 주변 직원들은 상대가 저에게 한 행동이 저를 좋아하기 때문에 한 행동이라며, 이해해라, 그 마음을 받아주는 건 어떠냐 등 가해자 입장에서 말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 상대방은 제 앞에선 항상 고개를 숙이고 다니고 주변에서도 직장에서 잘 넘어가라고 권유해 신고하지 않고 이 일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하지만 2개월 정도가 지나서 상대방이 뒤에서 직원들에게 억울하다며
“서로 좋아서 그런 것이다, 쟤(피해자)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
라는 말을 하고 다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겐
“이해해줘라, 용서해줘라”
라고 권유했던 직원들도 결국엔 상대방 말을 더 믿어 저에게 등을 돌린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 사건 발생 6개월 후에 경찰서에 강제추행으로 형사고소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겪은 2차 가해는, 상대방과 친한 A직원이 회사 안팎으로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데 여자가 나중에 마음을 바꿔 고소했다며 남자는 너무 억울한 상태라는 소문을 냈으며, 이런 소문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서로 얼굴 알고, 인사 나누던 직원들 중에는 갑자기 저를 피하거나 저만 보면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도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어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모두 A직원과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비언어적 표현들은 제 마음에 비수로 꽂혔습니다. 한 번은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친 직원의 찡그리고 혐오스러운 표정을 보았습니다. ‘나는 당신과 나쁜 감정이 없다. 그러니 이런 모습들은 자제해달라’며 문자를 보냈지만 돌아온 답변은 이상하고 예민한 사람 취급이었습니다.
이런 2차 가해들에 너무 억울하여 민사로 대응하는 방법을 알아보았지만, 민사로 대응할 만한 증거가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그 시간을 보냈습니다.
경찰에 고소한 후, 회사 내에서도 강제추행 가해자와 2차 가해한 A를 모두 성고충심의위원회에 건의했습니다. 직장 내 성희롱은 인정받았지만, A의 2차 가해는 증거가 부족하고, A도 그런 적 없다고 주장해 2차 가해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후 2차 가해 직원은 자신을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며 저에 대한 이상한 소문을 더 내고 다녔고 그렇게 저에 대한 2차 가해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이 시간을 어떻게 버텨냈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저는 제가 당한 강제추행보다는 이 2차 가해로 더 힘든 나날을 보냈습니다. 아직 직장 내 괴롭힘에서 2차 가해에 대해서 자세한 기준이 나와 있지 않고, 요즘 2차 가해에 대한 말들이 많이 나오지만 2차 가해의 처벌에 대한 증거를 남기기가 힘들며 2차 가해가 발생하지 않게 관리하는 것도 규정되어 있는 게 없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지금은 그렇게 저에게 2차 가해를 한 직원들을 복도에서 마주치면 저에게 고개를 숙이고 지나갑니다. 저의 일이 법원으로 넘어간 시점에 상대 직원은 질병 휴직을 냈으며, 저를 불편해하고 피하던 회사 내 분위기도 저에게 조금씩 우호적으로 변해갔습니다. 아마 이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갔다는 것 자체가 상대가 잘못한 게 있다는 뜻이었기에 사람들의 태도가 바뀌지 않았을까 합니다. 회사 내 성고충심의위원회에서도 저의 지속적인 병원/상담 지원과 2차 가해 실태 모니터링을 할 것을 위원회 의견으로 냈었습니다. 그러나 지켜지지는 않았습니다. 몇 년에 한 번씩 담당자가 바뀌는 회사특성 상,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제가 직접 사안 처리를 요청해야 해 부담스럽고 어려운 면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도 피해자를 위해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사항인 것 같습니다. 지금도 회사 내에서나 밖에서 저와 비슷한 일을 겪은 여직원의 이야기를 한 번씩 전해 듣곤 합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결국 그 여직원이 직장을 그만두거나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 말로 끝을 맺습니다. 아직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 피해자가 또 피해를 받는 환경입니다.
지금은 최종 결과를 받고, 경찰에 고소한 것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제 마음에 상처가 많이 아물어졌는지 그저 담담합니다. 상담 선생님께서는 이 일은 저의 인생에서 큰 태풍과 같은 일이었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태풍이 오는 것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니다, 태풍이 지나감으로써 바닷물도 순환하여 다시 맑아진다고 하시며 저에게 이 사건 속에서 긍정의 메시지를 심어주시려 노력하십니다. 이제 이 일은 저에게 과거의 한 사건으로 남겨지고 있습니다. 지금도 저를 색안경 끼고 바라보는 직원들과 마주치지만, 이 일을 과거로 남기고 저는 저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나아가려고 합니다.
강제추행과 주변 직원들의 2차 가해 등으로 힘든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저를 도와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경찰에 증인으로 참여해주겠다는 직원도, 함께 아파하며 법원에 엄벌탄원서를 써준 친구들도, 저를 배려하며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 직원들도, 이런 저를 응원해주는 분들도, 모두 저에게 감사한 분들입니다.
저의 이 기고문으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한 인식이 바뀌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