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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논평

[광주 연극계 성폭력 사건 1심 선고에 대한 대책위원회 입장문] '피해자의 용기와 연대자의 힘으로 이끌어낸 변화'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25-02-19
조회 수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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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문]

 

피해자의 용기와 연대의 힘으로 이끌어낸 변화

-광주연극계성폭력사건 1심 판결에 부쳐-

 

지난 17, 광주지법 제11형사부는 광주 연극계 성폭력 사건과 관련하여 피고인 A의 강간치상, 준강간치상, 강제추행치상, 강제추행 혐의(피해자 2)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며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반면, 피고인 B의 특수강간등치상, 강제추행치상 혐의와 피고인 C의 준강간치상 혐의에 대해서는 각 무죄를 선고했다.

 

피고인 A에게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피고인 A는 연극계 극단 대표로서 연극계에 첫발을 디딘 피해자를 상대로 피해자를 밀어주겠다는 등 그의 곤궁한 상황을 빌미 삼아 피해자를 추행하고, 피해자가 그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자 강제추행, 강간미수, 강간, 준강간 범행까지 저질렀다. 피해자는 이 사건 각 범행 당시 19세에 불과한 사회초년생으로 위와 같이 신인 연극배우로서 극단 대표인 피고인의 추행 등 각 범행에 제대로 저항할 수 없는 상태였는바, 이 사건은 피해자에게 잊을 수 없는 심리적 충격을 주기에 충분한 사건이라고 하였다.

 

또한, 재판부는 피해자에게 발병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의 상해는 수 회의 강제추행 및 강간, 강간미수, 준강간 행위가 거듭되는 과정에서 그 행위 모두가 원인이 되어 발병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라고 판시하였다. 피해자에게 발생한 상해와의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데에 사건 이후 피해자가 작성해 온 피해자기록물(일기, 메모, 녹음, 주변인과 주고받은 메시지, 신체적정신적 외상 치료와 관련한 진료 기록) 등이 중요한 증거로 인정된 점도 큰 의미가 있다. 신체적정신적 외상에 대한 강간치상 인정은 이 사건 피해자처럼 피해 이후 발현된 아픔으로 괴로워하는 피해자들이 사법 절차를 통해 권리 구제를 받을 수 있는 중요한 판례로 남을 것이다.

 

피고인 BC의 특수강간, 강제추행, 준강간 혐의와 관련하여 그 구성요건인 폭행 내지 협박 등 가해자의 유형력 행사의 정도에 대한 판단 및 피해자의 심신상실항거불능 상태에 대해 지나치게 협소한 해석을 내린 재판부의 무죄 선고는 성폭력 피해자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 특수강간죄에서 항거불능은 단순한 물리적 폭행뿐만 아니라 심리적 지배력, 공포 분위기 조성 등을 포함하여 판단해야 한다.

 

재판부는 피고인 A, B특수강간치상 무죄에 대해 피고인 AB가 각각 피해자의 상의와 하의를 벗기려 잡아당긴 부분에 대해 어느 정도의 유형력 행사라고 볼 수는 있을지언정 항거를 불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기술했다. 또한, 특수강간 직후 발생한 피고인 B의 강제추행에 대해서는 범행일시를 특정하기 어려운 점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 C의 준강간치상 혐의에 대해 피고인의 행위를 현행법상 처벌규정이 없는 소위 비동의간음으로 보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피해자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한 준강간 행위로 보기는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가장 보통의 준강간사건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 사법부가 준강간 사건을 다루는 데 있어 가진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피해자가 동의도 저항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되었음에도 이를 보호하지 못한 현실은 준강간 범죄에 대한 형법의 엄중한 처벌 목적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마지막으로 재판부는 피고인 A는 극단을 창단한 대표이자 연극배우로서, 연극계에 막 입문한 어린 나이의 피해자들을 상대로 그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하여 추행을 일삼거나 성폭행을 하는 등 그 죄질이 불량하다. 피고인의 범행으로 피해자들이 입었을 정신적 충격과 고통, 피고인의 범행으로 파생된 피해자에 대한 추문 등 여러 정황 등을 헤아려 보면 피고인의 죄책을 가볍게 볼 수 없으므로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라며 이 사건의 엄중함을 강조하였다.

 

2022629일 사건 공론화 이후 1심 선고를 받기까지 28개월이 걸렸다. 이 시간을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는 연대자들의 존재 덕분이었다. 유의미한 선고 결과를 만든 사법부의 정의가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정의는 사회적 연대의 힘에 있었다. 공론화 이후의 연대, 탄원 활동, 1인 시위, 재판 방청, 각종 포럼과 토론회 개최, 함께한 치유 여행 등이 피해자와 대책위원회 활동의 큰 동력이었음을 밝히며 연대자 분들에게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번 선고가 예술현장에 만연한 폭력과 차별에 대해 예술계가 깊이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그동안 근거 없이 퍼져온 왜곡과 2차 가해가 멈추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란다. 당사자와 대책위원회는 가해자들에게 법적 책임을 묻는 일을 계속해 나갈 것이며, 동시에 치유와 회복을 위한 노력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자신의 삶을 걸 만큼의 큰 용기로 사건을 고발한 김산하(가명), 서주영(가명) 두 사람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며, 그들의 용기가 만든 변화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2025219일 수요일

 

광주연극계성폭력사건해결대책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