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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이정선 교수님과 함께한 나주 지역사·여성사 기행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5-09-22
- 조회 수
- 117 회
광주여성민우회는 9월 19일(금), 조선대학교 역사문화학과 이정선 교수님과 함께 나주 지역사·여성사 기행을 다녀왔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었던 동학농민운동(1894)과 광주학생독립운동(1929)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배울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었는데요.

도청 역할을 하였던 금성관에서 금성토평비, 즉 금성(나주)에서 동학농민운동을 평정한 것을 기념하는 비석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비문을 쓴 기우만 등 을미의병에 앞장 선 많은 사람들이 동학농민운동에 반대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의병 운동-동학농민운동-광주학생독립운동-5.18 민주화운동 등으로 이어지는 광주 정신이 실은 복잡한 관계 속에 놓여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서성문 위에 올라서서는 갑오 이소사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척이나 아름답고, 강하고, 호리호리하고, 강인한 성격이라고 하는 이소사의 이야기는 사실 내용의 절대다수가 소설이라고 합니다. 2차 봉기에서 장흥 쪽 전투에 참여했고, 잡혀서 나주로 압송된 것만이 기록에 존재합니다. 그러나 당시 여성을 흥밋거리로만 다루던 일본 신문은 여성 동학군이 대단한 미인이라고 보도했고, 이 말은 여성 범죄자를 다루는 상투어기도 하였습니다. 싸움에 참여한 여성에게 과도하고 완벽한 영웅서사를 부여하는 방식보다, 그 싸움이 여성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음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는 광주학생독립운동에 대해 배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댕기 머리 희롱 사건’은 사실 진위가 분명하지 않다고 합니다. 여성들을 희롱의 피해자로만 기억하기보다, 이광춘이 광주여고보에서 1930년 1월 13일 체포된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험을 거부해 퇴학당한 일(백지동맹) 등, 피해자가 생존자로, 활동가로 연결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추는 일은 어떠할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일정은 동학 농민군 희생자를 기리는 사죄의 비였습니다. 나주는 동학농민군이 전국적으로 가장 많이 희생된 땅이라고 합니다. 과거의 깊은 상처를 간직한 나주를 미래의 상생 평화의 나주로 만들고자 한일 공동 심포지엄을 통해 나주 동학농민혁명의 역사를 복원하였고, 희생된 동학농민군을 기리는 이 비가 세계 평화의 초석이 되길 기원하는 내용입니다.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는 용기를 담은 비석으로 기행을 마무리할 수 있어 의미 있었습니다.
이번 나주 역사 기행은 기존의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함께해주신 이정선 교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