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소식지
[민우통신문 2025-2호] 기후위기 앞에서 무기력 할 때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5-08-21
- 조회 수
- 131 회

기후 위기 앞에서 무기력 할 때
“기후 재난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대피할 수 있는가?”
“기후 위기는 나의 일상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나는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가?”
나는 가난했지만, 정책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기에 질문들에 모두 ‘그렇다’고 답할 수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각자 어떤 대답을 하게 되는지 잠깐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이 질문들은 초등학생 대상 기후 인권 감수성 교육에 사용된 것 중 일부였다.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기후위기가 다르게 다가옴을 공감하고, 기후 위기로 인한 불평등 해결을 위해 사회적 지원과 관심이 필요함을 이해하는 교육이었다. 교육은 이렇게 진행되었다. 학생들은 각자 다른 캐릭터 카드를 받는다. 예를 들어 ‘일자리를 잃은 광산 노동자’, ‘초고층 아파트에 사는 대기업 회장’, ‘외양간에서 사는 소’, ‘물질을 하는 해녀 할머니’, ‘하루에 배가 두 번밖에 들어오지 않는 작은 섬에 사는 어린이’ 등이다. 이후 강사가 “폭염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에너지 요금 걱정 없이 에어컨을 틀 수 있다”, “나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바이러스의 위협을 크게 느끼지 않는다” 같은 문장을 읽어준다. 그 문장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으면 한 칸 앞으로 나아간다. 아니라면 그대로 멈춰 선다. 고소득층 캐릭터를 맡은 학생들은 끝까지 도달했지만, 취약계층 또는 비인간 동물인 소를 맡은 경우는 한 칸도 움직이지 못하기도 했다. 그 학생들에게 어떤 기분이 들었냐고 묻자 속상하고 답답했다고 말했다. 그 답답함을 겪은 마음을 바탕으로 기후 위기가 찾아와도 모든 존재가 안전하고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하였다.
그러나 막상 안전하고 존엄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일이 너무 어렵고 불가능한 것만 같아 우울함과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최근 나를 무너뜨린 뉴스는 지난 7월 7일 경북 구미에서의 베트남 출신 23세 이주노동자의 사망이었다. 혹서기여서 한국인 노동자들은 사업주와 단체협약을 통해 새벽 6시부터 오후 1시까지 단축근무를 했지만, 이주노동자들은 오후 4시까지 일했다.
돈보다 생명을 위해 살아야 한다, 생명에는 경중이 없다는 당연한 이야기가 지켜지지 않을 때, 기후 위기에 큰 책임이 있는 권력층이 여전히 더 많은 자본을 가지기 위해 지구를 낭비하고 파괴할 때, 그리고 그들은 기후 위기와 관련 없이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때, 기후 위기의 문제가 환경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노동착취, 인종차별, 계급 불평등과 교차하는 비극을 볼 때, 그리고 그 문제 하나하나가 너무 크고 무거워서 내 노력으로는 바꿀 수 없다고 느낄 때,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비해 그 대책은 너무나 느리고 지지부진하게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그리고 내가 이런 문제에 대해 회피하고 무시할 수 있는 위치에 있고, 회피하면 덜 힘들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무기력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 무기력 속에서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절망을 느낀다는 건 그만큼 이 사회가 잘못되었다고, 바뀌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뜻 아닐까? 너무 거대하고 잔인한 구조에 대한 분노와 무기력함을 변화를 촉구하는 에너지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세상이 바뀌지 않을 것 같다는 감정은 오히려 내가 기후 위기에 대응해 행동함으로써 없앨 수 있지 않을까? 사회가 바뀌지 않는 것 같다고 해도 내가 바뀌고 있음을 내가 안다면 나를 무기력한 존재가 아니라 보고 있고 말하는 존재로 여길 수 있지 않을까?
나는 무기력해지지 않기 위해 무기력함을 이 글에서 말해보았다. 나처럼 무기력함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무기력함을 같이 느끼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변화를 촉구하는 일을 함께 해보자고 말하기 위해서다. 학생들에게 기후 위기의 불공평함에 대해 교육하는 일, 밥을 먹을 때 비건 지향1 음식으로 먹는 일, 민우회 활동가들과 함께 텀블러를 쓰는 일 하나하나에서 내가 에너지를 얻어가는 것처럼, 이 글을 읽는 분들도 혼자서 무기력함과 죄책감에 휩쓸리기보다는 함께하는 감각을 얻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