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소식지
<2022-07 광주여성민우회 통신문> 칼럼 "낙태죄 폐지 이후, 책임의 공백을 채워라!"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2-09-16
- 조회 수
- 510 회
광주여성민우회 회원 희동
2022년 6월 24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여성의 임신중단에 대한 권리를 인정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번복했다. 앞서 문건유출로 어느 정도 예고된 일이었으나 오랜 투쟁으로 얻어낸, 응당 보장되어야 할 권리가 한순간에 당사자도 아닌 기득권 남성들의 결정으로 박탈되는 경험은 전세계 페미니스트들에게 거대한 충격을 주었다.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의 몸을 통제하고자 하는 관념처럼 오래되고 낡은 피켓을 다시 들었고,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에 대한 권리와 안전을 침해당하게 되었다.
그리고 태평양 건너편에서 이 소식을 들은 우리,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은 우리의 현 상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성인지예산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여성가족부의 역사적 소명이 다했다는 말을 하는 국가지도자를 둔 대한민국의 상황에 대해서 말이다.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대한민국에서 임신중단은 더 이상 범죄가 아니게 되었다. 그렇다면 3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국적의 여성은 임신중단과 관련된 권리를 온전히 보장받고 있을까? 애석하게도 '아니'다.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 이후, 형법에서 임신중단에 대한 처벌 조항이 삭제되었지만 모자보건법에는 아직 임신중단이 허용되는 범위가 명시되어있다. 법에서 허용하는 임신중단의 범위는 정해져있지만, 그 범위를 벗어난 임신중단을 해도 처벌받지는 않는 애매한 상황이 된 것이다.
현장에서 임신중단을 지원하는 활동가들의 경험에 따르면, 낙태죄가 폐지된 이후에도 병원에서 임신중단을 위해선 임신 초기이거나, 모자보건법상의 사유에 따라 성폭력피해사실확인서 등의 성폭력 피해 사실 입증을 요구하거나, 남성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다.
낙태죄 폐지 시위 관련 기사 중 -국민일보 2019.03.30일자 신문
이런 상황에서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국회에 계류되어있고, 임신중단 약물인 미프진에 대한 허가는 아직 요원하며, 위민온웹은 유해사이트로 차단이 되어서 임신중단을 하려는 여성들은 불법사이트의 성분이 불분명한 약을 먹어야 한다. 면허를 가진 의사, 안전이 보장된 병원, 위생적인 환경에서의 임신중단은 아직도 보장되지 못하고 있다. 체계적인 법률 구축을 통해 국가의 시스템 아래로 들어왔어야 하는 임신중단에 관한 서비스들은 입법 공백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것처럼 무시당하고 있다.
국가와 정치권이 책임을 서로 미루는 사이에 피해를 보는건 여전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들이다. 사회구조와 통념상 주변에 도움을 쉽게 청할 수 없는 이주 여성, 미성년자 여성들은 특히 더 위험한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국가는 한시라도 빨리 안전한 임신중단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한다.
로 대 웨이드 판결 번복과 임신중단 책임공백은 국가를 막론하고 여성이 가진 신체에 대한 선택권이 21세기에 와서도 어떻게 침해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거대한 백래시에 직면하거나, 혹은 무시 당하거나.
하지만 우리는 지금껏 그래왔듯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할 것이다. 로 대 웨이드 판결 번복에 대한 국제앰네스티 미국 지부 성명문의 일부를 차용해 마무리를 대신한다.
'지금 여러분이 어떤 감정을 느끼든 – 분노이든, 두려움이든, 배신감이든, 슬픔이든 –
여러분은 혼자가 아니다. 여러분은 오늘의 결정에 반대하는 다수의 미국인 중 한 명이다.
(혹은) 인권을 위한 풀뿌리 운동을 벌이고 있는 전 세계 1000만명의 지지자 중 한 명이다.
이것이 우리의 힘이다.
이것이 우리의 희망이다.
우리는 다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