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소식지
[민우통신문 2025-1호] 편집위원 '이월'의 광주적응기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5-05-28
- 조회 수
- 52 회

1. <인사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쾌청한 5월입니다. 저는 이번에 새로 인사드리는 민우통신문 편집위원 이월입니다.
편집위원으로서 어떤 ‘의미 있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을까 고민한 결과 저의 “광주 적응기”를 연재해 보기로 하였습니다! 민우회와 함께하는 올해를 지켜봐 주세요!
2. <너는 다~~~ 계획이… 없구나?>
제가 처음 광주에 올 결심을 한 건 작년 늦가을이었습니다. 마음 깊숙이 있었던 이주에 대한 욕망이 제게 '언제까지 미룰 거냐'고 다그치는 느낌이었어요. 더 이상 유예할 수 없고 더 이상 고여있을 수 없었기에 가장 위에 동동 뜬 마음을 하나 실행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무작정 광주에 가겠다고 선언한 기억이 생생합니다.
3. <2월은 역시 춥구나>
광주에 사는 친구의 집에 잠깐 얹혀 지내다가 집 계약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구했어요. 새로 구한 일에 적응하느라 바삐 보낸 평일이 지나면 주말에는 충장로의 ‘광주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았습니다. 2월은 제게 심리적으로도 물리적으로도 추운 한 달이었던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시작이 막연히 냉랭했고 한겨울 바람은 그보다 더 날카로웠으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차곡차곡 모이는 영화표와 눈 오는 날이면 유독 책이 술술 읽히던 골목의 서점이 매일 아침 제 신발 끈을 꽉 묶어 준 덕분에 무릎 깨지지 않은 2월이었습니다.
4. <3월은 기다림의 달>
여러분은 3월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 저는 “봄”이요! 3월이면 새순이 나고 꽃이 피는 순간을 기대하게 됩니다. 하지만 겨울을 등 떠밀고 봄을 맞이하려면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하죠. 제게도 3월은 그랬습니다. “진짜 봄”이 오는 순간을 아주 간절하게 기다렸습니다.
4.1 첫 번째 기다림은 여성으로서의 기다림이었습니다. 여성이 어디에서나 선명한 그날을 우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기다려 왔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기다림을 하고 계시나요? 저는 ‘참여의 기다림’을 실천해 보았습니다!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빵과 장미’에서 주최한 세계 여성의 날 퍼레이드 <연대하는 신체>에 참여했습니다. 힘찬 바투카다와 시작한 행진은 5·18민주광장까지 함께했고 돌아오는 길에는 민중엔터테이너 야마가타 트윅스터 님이 이끌어주셨습니다. ‘둥둥’ 거리로 울리는 북소리와 쩌렁쩌렁한 노랫소리, 행진하는 우리의 모든 발자국이 온전하고 완전하게 여성을 응원했습니다.
‘기다림’은 ‘끝’에 대한 정념입니다. 그 끝을 만들어가는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4.2 두 번째 기다림은 시민으로서의 기다림이었습니다.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으로 우리는 일상을 내어놔야 했습니다. 저는 동료 시민들과 국회 앞에서 탄핵 가결을 맞이하고 ‘이제 됐다’고 안도했지만 해가 바뀌고 겨울이 끝나갈 때까지 진척되지 않는 상황에 큰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그때 마침 ‘소년의 서’ 대표님께서 5·18광장에서 윤석열 파면을 위한 책 읽기 모임을 시작하셨습니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 나가기 시작한 책 읽기 모임은 제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매일 저녁 마주하는 새로운 얼굴들과 익숙한 얼굴들. 그 모두의 목소리에 실재하는 힘을 느끼기 시작했을 때, 하루를, 며칠을, 몇 달을 더 열심히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기다림은 끝이 있었습니다. 그 끝에서 또 다른 기다림을 맞이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덜 막연한 것도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5. <4월은 나를 쫓아와>
4월부터는 정말 봄 같았습니다. 마법같이 날이 푸근해지기도 했고 꽃도 많이 피었습니다.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 하죠, 저는 허겁지겁 첫 시험을 치렀습니다. 늦가을, 광주에 와야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아직 학생을 모집 중인 학교를 찾아 급하게 원서를 넣었던 기억이 납니다. 보통은 학교 때문에 이주하지만, 저는 이주 때문에 학교에 간 격이라서 그런 걸까요? 애정 없는 학교 공부를 하기란 참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결국 마지막 시험을 이틀 남기고 저는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 재오픈 잔치에 갔습니다.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는 추운 2월, 제 신발 끈을 묶어준 바로 그 서점입니다. 4월 내내 확장 공사를 하고 새롭게 시즌2를 맞이한 기념으로 주최하신 잔치에서 저는 무대에 올라가 노래까지 부르고 왔습니다. 넓고 다채로워진 ‘이것은 서점이 아니다’를 추천합니다.
6. <5월도 달릴까요?>
5월 초에는 긴 연휴가 있었죠, 저는 고향에 가서 가족을 만나고 왔습니다. 전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주말을 이용해서 가느라 하룻밤 자고 오는 짧은 일정이었는데요. 이번에는 연휴 꽉 채워서 반가운 친지들도 만나고 맛있는 밥도 든든히 먹었습니다. 특히 제 오랜 친구이자 가족인 말티즈 ‘삼월이’와 오랜만에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여러분도 사랑하는 존재들과 함께하는 따뜻한 5월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6.1 4월 말부터 시작된 광주여성민우회 성교육 전문 강사 양성 교육은 5월에도 순항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보고자 신청한 성교육 전문 강사 양성 교육은 회차마다 제게 새로운 시야를 열어줍니다. 제가 얼마나 편협했는지, 얼마나 장구히 똑같은 모서리를 맴돌았는지 알아가는 건 두렵기도 합니다. 하지만 새롭게 느끼고 얻어가는 것들의 설렘이 항상 두려움의 정도를 능가하니 얼마나 다행인가요! 앞으로의 제가 진심으로 기대됩니다.
6.2 5월쯤이면 상반기의 끝을 달려가고 있으니 모두 바쁘고 조급하겠죠.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잊을 수 없는 게 있다면 1980년 5월에 울린 광주 시민의 목소리입니다. ‘에너지 보존 법칙’을 아시나요? 80년 광주 시민의 목소리는 또 다른 에너지로 변환되어 우리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저는 그 에너지와 함께한 공연, <나는 광주에 없었다>를 보고 왔습니다.
내용과 연출, 배우들의 연기까지 뭐 하나 아쉬운 게 없었지만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관객 참여형 공연이었던 점인데요, 관람객과의 선을 무너뜨리고 공연장 안의 모든 사람을 그날의 광주로 데려다주었습니다. 두 시간 남짓의 시간 동안 다 같이 울고 웃었고 사라지지 않은 80년 광주의 에너지를 하나씩 품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이들이 하나의 마음으로 기억하는 5월이 되기를 바라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광주 적응기” 2편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