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소식지
[민우통신문 2024-3호] 신입회원 인터뷰 : 정건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11-24
- 조회 수
- 70 회
회원인터뷰 : 정 건
인터뷰 진행 : 젬마(박재영)
햇살(정지윤)
인터뷰 정리 : 젬마
'잠깐!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불편함을 못 느낀 건 오른손잡이처럼 남성이기 때문 아닐까?'
안녕하십니까?
정건회원님 반갑습니다. 지난 '민우회원의 밤' 경매 이벤트에서 유난히 활약을 보여주신 덕분에 올해 마지막 소식지 인터뷰이로 선정되셨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Q. 먼저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A. 네. 안녕하세요. 평범한 노무사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는 공인노무사, 민우회 2년 차 회원인 정건입니다.
Q. 민우회 언제, 어떤 계기로 가입하게 되셨는지요?
A. 서울에 있을 때는 이제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한국여성민우회에 가입했어요. 그런데 고향으로 오고 나서 너무 심심하고 여기서 좀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곳이 없을까 생각했어요. 도시와 농촌의 문화격차가 크더라구요. 제가 있는 곳은 시골인데 고립된 느낌도 있었고 ‘내가 사는 지역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하고 찾아 보다가 광주여성민우회가 생각이 나서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Q. 현재 평범한 노무사라고 이야기하고 활동하고 계시는데 노무사라는 직업을 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A. 일단은 가부장적이고 마초적 남성성을 강하게 갖고 있는 정건이 골랐구요. 저 자체도 해고자 출신이고 저도 잘리고 나니까 좀 억울하더라구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전공이 나랑 안 맞는걸 깨닫게 됐었고 다른 길을 찾다가 학원에서 해고 당해서 화가 나는데 나중에 노동법이라는 게 있다라는 것을 알게되었어요. 물론 그 법이 저한테 적용되진 않았지만요. 그런 아쉬움을 뒤로 하다가 군 복무 때문에 고향에 와서 친구들을 만났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찍 일을 시작한 친구들이 많았거든요. 오랜만에 만나서 술 한잔하는데 친구가 "월급을 못 받았다. 어떻게 해야 하냐?"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고 거기서 나는 모른다고 해야 했는데 "내가 알아보겠다." 고 답했어요. 그게 저와 노동법의 첫 만남이었죠. 그러다 노무사가 됐네요.
Q. 경매 이벤트에서 정말 눈에 띄는 활약을 해주신 덕분에 재미나고 훈훈한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은 경매에 참여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정말 물건이 마음에 들어서였는지 아니면 광주여성민우회에 애정과 사랑과 관심이 많아서 후원할 방법을 경매로 선택하셨을까요?
A. 두 번째라고 할께요. 사실 둘 다인데 카드지갑은 정말로 필요했구요. 명함을 따로 보관할 데가 없었는데 색깔도 너무 예쁘고 좋아서 이거는 반드시 사야겠다.그런데 생각보다 낮은 가격에 얻었다. 사실 경매 이벤트가 있다라는 걸 듣고 이미 현금을 준비를 해놨습니다.
Q. 혹시 자랑을 좀 하셨나요?
A. 굳이 자랑할 필요가 없죠. 내가 갖고 있는 것 만으로도 자랑이고 여기 민우회에 나오면 자동으로 가능하지요. 민우회 사람들은 알아 볼 테니까요. 아! 그리고 그림은 원래 아버지께 선물 드리려고 했는데 아버지께서 "네 방에 걸어놔라." 하셔서 제 사무실 겸 방에 걸어놨어요.
'민우회원의 밤'에서 셀럽 경매 이벤트에서 낙찰받은
<김화순 작가 '4월의 춤'>
Q. 광주여성민우회가 준비한 '민우회원의 밤'은 어떠셨을까요?
A. 저는 이렇게 많은 게 준비된 줄 몰랐어요. 너무 죄송했어요.
아니 이렇게 열심히 준비한 줄 알았으면 경매 금액을 그렇게 부르는 게 아닌데... 저는 식사 자리 정도만 생각했는데 무대까지 준비하실 줄 상상도 못했어요. 아니 도대체 일하기도 바쁜데 언제 이것저것 준비했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식사도 비건이었는데 정말 좋았습니다. 메뉴들도 다양했구요. 저 또한 (비건메뉴에 대한)아이디어를 얻었어요.
Q. 노무사 일을 하시면서 회원들에게 공유해주실 만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A. 육아휴직을 이유로 한 해고 사건이요. 육아휴직을 신청했는데 신청서 작성을 하지 않고 구두로 신청을 했어요. 그런데 육아휴직을 신청했다는 증거가 없으니까 복직도 못하는 상황인거죠. 지방노동위원회에 이분이 원하는 복직과 육아휴직 사용을 신청했어요.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등 구제 신청을 하면 보통 2~3개월 후에 판정이 나요. 그럼 2~3개월 동안 소송처럼 이 해고가 왜 부당한지 증거 제출하고 상대방도 반박하는 서면을 내요. 상대방 주장에 또 반박하고 이 절차를 반복하면서 한 2개월 뒤에 누가 이겼는지 판정을 하고 한 달 뒤에 판정서가 와요.
그러면 이 판정서를 받고 10일 안에 불복할지 말지를 결정해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을 신청해야 돼요. 이 10일 사이에 이분이랑 이걸 불복할지 말지, 판정서를 보고는 '중앙노동위원회에서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얘기했던 거예요.
저희가 심급 대리 원칙이라 한 번 맡았다고 꼭 중앙노동위원회까지 (같이 맡아서) 가는 게 아니에요.
저희는 지방노동위원회까지만 하는 거고 추가 계약을 하면 중앙노동위원회까지 하는 거라서 그분한테 물어봤죠.
진짜 하루 남겨 놓고 재심 신청하고 2~3개월 동안 다퉜는데 거기서 중요한 증거가 나왔어요.
이분 핸드폰에 통화가 자동 녹음이 되어있더라구요. 그 녹음 파일을 본인도 모르고 있다가 배우자분이 찾아내 가지고 주요 증거 자료로 활용할 수 있었어요. 정말 운이 좋았던 사건이었습니다.
Q. 서울에서 활동하시다 고향으로 와서 활동하시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A. 공황장애 때문에요. 사실은 직장 생활이 일단 안 맞았고요. 처음에 고향에 와서 한 3~4개월은 거의 요양만 했어요. 그냥 잠만 잤어요. 한 3개월 정도 거의 잠만 잤는데 그렇게 누워 있다보니 회복이 되었어요. 수영도 하고 뭐 이것저것 조금씩 늘려가는데 너무 심심한 거예요. '그냥 개업이나 한번 해볼까? 안 되겠다 싶으면 폐업하지 뭐~' 하는 마음으로 개업했어요. 사무실 구하지 말고 온라인으로 해보자했는데 '이게 왜 장사가 잘 되는데? 왜 의뢰가 들어오는데?' 가 된거죠. 사실 이거 안 되면 폐업해야지 잘될 거라 생각하고 한 건 아니었어요.
Q. 바쁜 와중에 나만의 일상은 이렇게 즐기고 있다 라고 소개해 주실 부분이 있나요?
A.보통 아침엔 수영하고요. 점심에 일하다가 상담 없으면 국궁하러 가고요.
출장도 가고 민우회에 페미니즘 독서모임 있으면 독서 모임 나오고 그렇게 한적하게 보내고 있어요. 가끔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근력 운동도 하고 지금은 다이어트에 집중해 보고 있습니다.
Q. 남성 페미니스트로서의 정체성이나 고민, 자부심 뭐든 함께 나눠주세요.
A. 군 복무가 끝나고 서울 갔을 때는 ‘송곳’이라는 만화가 한창 유행했어요. 노무사라는 직업을 좀 알고 내가 저 직업이 맞을까 그럼 내가 노동자 상담을 할 수 있는 곳은 없을까 해서 활동하게 됐던 게 알바 노조였어요.아르바이트 노동조합이었고 거기서 처음 활동을 시작했었고 거기서 여성주의를 처음 접했어요.
그래서 반 페미니즘적인 남성 조합원이 문제가 있다고 해서 어떻게 하면 '이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 속에서 예비역을 위한 페미니즘 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일반 노조 내에 활동을 많이 하는 조합원 들을 모아다가 페미니즘 책 모임을 한 거죠.(『자본론』 읽자고 해놓고 『젠더와 사회』로 책을 바꾸고) 모임을 내가 하자고 했으니 도망도 못 가겠고 페미니스트 모먼트의 순간이 있는데 오른손이 어릴 때 수술해서 이래요.(수술자국 보여 주셨음) 왼손으로도 젓가락질이 가능할 정도로 왼손을 잘 사용해요.
지갑 같은 것도 보통 왼쪽 주머니 이렇게 해서 넣고 다니거든요. 근데 어느 날 지하철을 타려고 개찰구를 지나려고 지갑을 꺼내서 찍는 순간 너무 불편 하더라구요.
'잠깐!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불편함을 못 느낀 건 오른손잡이처럼 남성이기 때문 아닐까?' 라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내가 페미니스트가 됐구나 그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Q. 인터뷰를 쉼 없이 달려왔습니다. 벌써 마지막 질문이네요. 정건님이 내년 민우회에서 함께 하고 싶은 일이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솔직히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저는 같이 하고 싶은 활동이 있다면 어쨌든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로서 나름대로 사회주의자면서 개량주의자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일터에서 직장 내 성희롱, 직장 내 괴롭힘이든 모성보호 제도든 간에 민우회랑 함께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