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소식지
[민우통신문 2024-3호] 디지털 공간의 여성과 시민단체의 역할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11-24
- 조회 수
- 48 회
디지털 공간의 여성과 시민단체의 역할
오프라인 사회에 있는 가부장적 여성착취 문화와 시스템, 산업구조를 타파하지 않으면
온라인 공간 역시 안전해질 수 없다.
각종 디지털 기기들과 온라인 환경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 된 시대에서, 여성은 얼마나 안전하다고 느끼고 있을까? 여성의 시각에서 봤을 때,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주변의 언급도 그렇고, 현실은 암담하다고 말하고 싶다. 실제로 안전한 여성의제 담론의 활성화가 온라인상에서 자유롭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싶다. 2016년 게임회사 넥슨의 성우 교체사건에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온라인 페미니즘 사상검증은 현재까지도 여성들이 온라인에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망설이게 만들고 있다. 수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발언 혹은 그에 상응하는 의사표시를 했다는 이유로 사이버폭력을 겪고, 직장에서 부당하게 해고당하였으나 그들은 국가 시스템의 보호를 받지 못하였다.
애니메이션의 수많은 프레임 중 한 컷에 있는 집게손가락이 페미니즘 사이트의 상징과 닮았다는 억지, 여성 캐릭터의 신체가 덜 노출되었다는 이유로, 회사에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 중 페미니스트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공격과 온라인상의 스토킹이 일어나고, 실제 여성 노동자의 SNS를 스토킹하여 입사 전 삭제한 페미니즘 관련 게시글을 발굴해 기어코 여성 노동자의 일자리를 잃게 만든 것이 불과 1년 전의 이야기이며, 이 사안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서비스 제공자와 이용자 모두 디지털 친화적인 게임업계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관찰되었던 것뿐이지, 온라인에서 활동하는 많은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이 자신의 사진과 본명을 공개하지 않는 맥락은 위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온라인상의 시민 공간은 아직 우리에게 안전하지 않다.
최근 대한민국에서 디지털 공간 및 기술과 가부장제에 기반한 여성착취의 교차점이 잘 드러나는 두 가지 토픽이 있었다. 한 가지는 넷플릭스 자체제작 예능인 ‘더 인플루언서 ’이고 다른 하나는 텔레그램을 기반으로 퍼진 딥페이크 성폭력이다. 이 두 가지 이야기를 통해 온라인 공간이 현재 여성에게 어떤 방식으로 구축되어있는지 이야기하는 것으로 첫 번째 걸음을 떼고자 한다.
‘더 인플루언서’는 77명의 인플루언서들이 참여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포맷을 가지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 인플루언서들의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그들이 무엇을 자신의 셀링포인트로 삼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 프로그램에서 몇몇 여성 인플루언서들이 여성의 신체를 분절적으로 대상화하여 보여주는 콘텐츠를 들고나왔고, 프로그램은 이를 적극적으로 편집·활용해 보여주었다. 더 나아가 그중 한 인플루언서가 평소에는 더 수위가 높은 방식의 자극적인 방송을 한다는 이야기와 그 방송의 일부 편집본이 다양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돌았다.
온라인에서는 이런 생존방식과 콘텐츠로 자신을 ‘셀링’하는 여성에 대해 ‘새로운 형태의 성매매다’ ‘인터넷 방송을 통해 결코 적지 않은 액수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사람을 성매매 피해자라고 동정할 수 없다’라는 말들이 많이 나왔다. 여성의 신체를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도구로만 여기고 그것으로 어마어마한 액수의 돈을 버는 일련의 행태에 여성으로서 생리적인 불쾌감이 드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서두로 가져온 것은, 이 자리에서 한 사람의 행위에 대해 좋다 나쁘다를 가리기 위함이 아니다. 이런 사회현상에서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것을 우리가 공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것이다.
온라인에서 일어나는 여성착취를 공적인 논의의 장으로 올리기 위해서 우리는 이 불쾌감, 분노를 개개인에게 돌리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앞서 말했듯 개인을 뛰어넘는 사회의 구조를 봐야 한다는 말을 하고 싶다. 여성이 자신의 몸을 매개로 하여 돈을 벌려고 할 때 그것에 돈을 내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것을 산업으로 만드는 사람들은 어디 있는지, 여성들이 그런 산업에 발을 들이는 것이 어렵지 않도록 허들을 낮추는 것은 무엇인지,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온라인에서 전혀 제재받고 있지 않다면 그것의 책임은 어디에 물어야 하는지. 이런 질문을 던지다 보면 현재 여성 인플루언서나 BJ들이 속한 생태계라는 것이 현실의 성매매·성 착취와 근본적으로 아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딥페이크 성폭력 역시 마찬가지이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뉴미디어뿐만 아니라 디지털 성폭력 역시 방식이 진화하여 누구나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합성할 수 있게 되었고, 일견 이것이 원인이 되어 딥페이크 성폭력이 일어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 그 자체로 이 정도로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가능한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번에 밝혀진 딥페이크 성폭력이 어떤 방식이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겹지인방”이라고 하는 것의 구조는 둘 이상의 남성이 그들이 공통으로 아는 여성을 매개로 하여 불법 합성물을 만들고, 그것을 보고 ‘낄낄’거리는 형태로 남성연대가 만드는 것이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체로 보지 않고 성적대상으로만 보며, 여성에게 모멸감을 주는 “능욕문화”라고 하는 것, 본질이 없는 남성성을 서로 승인하고 승인받기 위한 매개로 여성을 착취하는 것이 호모소셜의 주류감성이었던 것이 이 산업구조의 핵심이다.
위의 두 예시는 단순하게 디지털기술의 발전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여성 혐오·착취로 보일 수 있겠으나, 정확한 설명은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여성 혐오와 여성착취가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재현된 것이다. 디지털이라는 포장지 안에 들어있는 근본적인 착취구조는 기존의 한국 사회에서 보이던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오프라인 사회에 있는 가부장적 여성착취 문화와 시스템, 산업구조를 타파하지 않으면 온라인 공간 역시 안전해질 수 없다. 따라서 온라인 공간에서의 여성 혐오를 근절하여 안전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선 결국 오프라인의 여성 혐오를 근절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답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렇다면 시민단체로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고민해보면, 의제를 설정하고 이것을 공적 논의의 장으로 올리는 일을 하나의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단체로써 이 논의의 장을 어떻게 세팅하고 누구를 불러와서 어떤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그리고 토론회를 연다고 했을 때, IT 계열의 기업이나 전문가를 데리고 오는 방향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서비스 제공자들이 만드는 시스템과 기술에 대해 잘 모르고, 그것을 제공하는 기업들에게는 여성단체의 이야기가 가닿지 않는다. 왜냐면 단체는 기술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주장하기 때문에 굉장히 표면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 기업, 플랫폼,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원론적인 비판에 대해선 누구도 답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어떻게 ‘구체적인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지 고려해봐야 할 것이다.
광주여성민우회는 텔레그램이 기업으로써 이런 책임을 지금까지 지지 않았다는 점을 비판하며 내부적으로 탈 텔레그램에 관한 논의를 했다. 업무용 메신저로 사용하고 있던 텔레그램을 앞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하며 이전까지 사용하고 있던 네이버 밴드 앱을 사용하게 되었다. 큰 움직임을 일으킬 캠페인 형식도 아니었지만, 참여하고 있던 외부 네트워크 대화방을 나가며 구성원들에게 이런 점을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다른 단체에서도 텔레그램을 계속 이용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딥페이크나 불법 촬영물 같은 디지털 성폭력은 주로 친밀한 관계, 혹은 아주 친밀하진 않더라도 피해자의 주변 사람들이 가해자인 비율이 높다. 이번 텔레그램 딥페이크 사건은 특히 내 지인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얼굴로 불법 합성물을 만들어 내가 모르는 곳에서 ‘낄낄거리는’ 행위를 하고 있고, 그것을 내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막연하고 거대한 공포를 경험하게 된다. 내 피해를 알게 된 뒤에는 경찰이나 법적인 선에서 ‘텔레그램은 못 잡는다.’라는 이야기를 듣게되고, 주변에 이야기하면 ‘오프라인에서 일어난 폭력도 아니고 진짜 네 몸도 아닌데 그것이 너에게 직접적인 피해가 되느냐’라며 피해를 축소한다. 피해자는 자신의 주변인, 공권력, 우리사회의 문화에 가지는 신뢰가 한꺼번에 깨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것이 왜 딥페이크가 우리 사회의 신뢰라고 하는 사회적 자본을 파괴하는 일인지에 대한 설명이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자에게 안전한 사회, 공간에 소속되어있단 감각은 어떻게 찾아줘야 할까? 안전한 사회란 디지털 성범죄 피해 촬영물 자체는 온라인에 있다고 해도 그것이 개인의 활동에 영향을 주지 않는 사회이다. 앞서 말했듯이 온라인과 오프라인은 떼어놓을 수 없이 밀접한 관계이고, 오프라인 사회에서 이 피해가 어떻게 해석되는지에 따라 피해자가 온라인 공간을 어떻게 해석하는지가 바뀔 수 있다. 피해 사실이 비난이나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고, 누군가 적절하지 않은 발화를 했을 때 그 즉시 비난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시민들의 인식변화가 생긴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피해 촬영물의 발생이 피해자의 문제가 아니라고 하는 주변 사회의 지지나, 그것을 가해자의 문제로 정확하게 바라보는 시선. 이런 것들이 피해자의 일상이 너무 많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사회적 완충재가 된다. 그런 사회적 완충재가 충분해지고, 피해가 발생해도 피해자의 삶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는 사회가 형성되어야 피해자가 온라인이란 공간에서 안전함이란 감각을 찾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완충재를 형성하는 것이 교육과 시민의식 변화의 목표이고 단체가 지향해야 하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