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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통신문 2024-1호] 피해자의 눈으로 봐야한다 : 518 조사위 보고서에 부쳐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05-11
- 조회 수
- 305 회
피해자의 눈으로 봐야한다 : 518 조사위 보고서에 부쳐
임수정 (광주전남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지난 4월 1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진조위)에서 '5·18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이하 결과보고서) 조사 결과보고서를 공개했다. 결과보고서를 공개하기 전에 진조위 전원위원회 3인(이종협, 이동욱, 차기환)의 입장이 보도자료로 배포되었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 홈페이지 https://www.518commission.go.kr 참조)
3인은 피해자 중심 접근원칙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증거도 없고 목격자도 없고 병원 진료기록도 없다, 다만 피해자의 진술만을 근거로 피해 사실을 인정하라는 것이냐, 그럴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결과보고서에는 '피해자 중심 접근원칙이란 피해자의 관점에서 침해를 바라보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피해자 진술 내용을 기반으로 피해 사실을 전후한 맥락을 파악하고, 사건 이후 40년 동안이나 피해 사실을 밝힐 수 없었던 이유와 배경을 분석했다. 피해자 진술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 계엄군의 작전 상황을 기록한 문헌을 조사하였고, 5·18에 참여했던 군·경에 대한 조사도 127회나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가해자 진술이 없는 상황에서 5·18성폭력 진상조사의 시작이 피해자의 진술로부터 시작되는 것은 당연한 절차이고 상식이다. '피해자 중심 접근원칙'은 증거, 목격자, 진료기록만으로 피해 사실을 판단하지 않는다. 시대적 배경, 여성폭력을 진단해온 역사, 여성의 성을 판단하는 차별적 사회문화적 현상과 그 사건을 중심으로 한 전후 정황 등 따져봐야 할 문제는 다양하다. 피해자 중심 접근이라는 말이 함의하고 있는 역사적, 사회문화적 배경은 삭제한 채 '피해자의 진술'로만 단순하게 축소해버리면 이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우리 사회는 성폭력 피해로 인한 내면의 깊은 고통과 그 심각성을 공감하거나 이해하지 않는다. 오로지 피해현장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폭력에 대한 선택 혹은 동의로 간주한다. 그것이 여성폭력을 바라보는 차별의 핵심적 요소이다. 피해자에게 왜 그 난리통에 거기에 있었느냐는 반문부터 시작한다. 시집 못갈라, 입 다물라는 겁박도 당한다. 5·18성폭력 피해자의 잘못은 무엇인가? 금남로에, 카톨릭센터 근처에, 도청 앞 분수대 앞에 있었거나 지나갔다는 것이다. 금남로는 광주시민의 생활 공간이었다. 피해자들이 금남로 현장에 있었던 것이 문제가 아니라 계엄군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문제였다.
성폭력 피해는 그 사람의 일생을 지배한다. 피해자들의 고통은 지난 40년 동안 이어졌을 것이다. 이 기막힌 사연을 단순히 '피해자의 진술'일 뿐, 목격자나 객관적인 증빙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동의 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는가.
피해자의 관점에서 5·18 성폭력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5·18 진상규명의 시작이다. 피해자 중심원칙에 동의할 수 없다며 몽니 부릴 일이 아니다. 피해자에게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깊은 상처다. 그 상처를 말하기 시작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 지금 그들이 할 일은 피해자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 언어를 존중하는 것이다.
*이 글은 5월8일 <무등일보>에 먼저 특별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