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소식지
[민우통신문 2023-4호] 나와 친해지는 법, 글쓰기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3-12-15
- 조회 수
- 330 회
나와 친해지는 법, 글쓰기
김진희
매년 말이 되면 내가 1년 동안 쓴 글들을 되짚어 읽으면서 한 해를 정리한다. 한 해를 돌이켜보면 한없이 아쉬운 일들만 생각나는데 글을 통해 살펴보면 아주 허투루 산 건 아닌 증거들이 넘쳐난다. 2023년 광주여성민우회 소식지의 편집위원으로 김항심 작가의 항심 책방 꼭지를 맡아 전했을 뿐 내 글을 싣지는 않았다. 편집위원으로서 우리 민우회원들에게 일상의 글쓰기를 권하는 글을 쓰는 것이 나의 마지막 미션이 되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기록하는 사람,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나를 인식해 왔지만, 올해는 특히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기도 하고 글쓰기 수업과 모임들에 참여하면서 내가 글을 써 온 시간을 되돌아보았다. 덕분에 여러분에게 글쓰기의 세계로 들어오시라는 초대장을 자신 있게 보낸다.
올해의 특별한 모임 중 하나는 학교 독서회 회원 3명과 함께 하는 글쓰기 모임이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뿐 제대로 써 본 적 없는 이들의 요청으로 만든 모임이라 더 특별했다. 내가 써 온 글들, 그들이 써온 글을 함께 읽으면서 내가 느낀 것, 글쓰기를 하면 얻게 되는 것들은 이렇다.
1.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를 바라보게 된다.
2. 글을 쓰면서 위로받고, 삶을 지켜나갈 힘을 얻게 된다.
3. 쓸 때는 미처 몰라도 나중에 읽다 보면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4.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1.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를 바라보게 된다.
날마다 글을 쓰는 시간을 갖는데도 자기 자신의 마음을 알지 못할 수는 없다.
대니 샤피로,『계속 쓰기 : 나의 단어로』
되돌아보면 내 마음을 모를 때 글을 썼다. 어지러웠던 마음이 글을 쓰면서 정리되었다. 나는 나를 살펴보는 게 좋았다. 싱숭생숭하고 자주 우울해지는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아야 그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결혼 후에는 말이 통하지 않는 남편과 입씨름을 하기보다는 내 격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나의 진의를 글로 표현해서 전달하는 게 편했다. 해오름 글쓰기 모임의 한 회원이 최근 쓴 글을 읽으면서 나는 행복했다. 항상 자기중심적이라고 생각했던 스스로였지만 글을 쓰다 보니 가족들을 생각하고 있더란다. 글을 쓰면서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나를 만났다니! 나는 아니 에르노의 『얼어붙은 여자』와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를 읽으며 격렬히 싸우는 대신 천천히 변화를 만들어가는 나, 오지랖을 펼치며 감당 못 할 일상을 사는 나와 닮은 주인공들을 만났다. 주인공들을 이해하려고 보니 결코 좋아할 수 없었던 나의 면면들, 싫기도 하지만 그런 면면이 나라는 사람의 개별성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2. 글을 쓰면서 위로받고, 삶을 지켜나갈 힘을 얻게 된다.
어릴 적부터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화나거나 슬프거나 감당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풀 곳이 없었던 나는 그 수많은 감정을 공책에 써 내려갔고……
독서회 글쓰기 회원 중 한 명은 어릴 적 친족들에게 정신적, 신체적 학대를 받아왔다. 그 시절 공책을 빽빽하게 채웠던 글쓰기의 시간이 있었기에 밝고 긍정적인 지금의 그녀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 공책을 채우던 시절 덕분에 그녀는 글쓰기를 하고 싶어 하기도 했다.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건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거든요. 희망 없인 일기를 쓰지 않아요.”
알쓸인잡에서 법의학자 이호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은 즈음인 2022년 연말 김항심 작가의 <모두를 위한 성교육센터 게릴라 수다회>에서 2023년에는 ‘아팠던 시기’를 거치며 달라진 나에 대해, 안녕하지 못한 순간을 어떻게 맞이하고 거쳐 갈 것인가 고민하는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했다. 목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그 길을 계속 걷고 있다고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도, 글을 읽으면서도 눈물 바람이 되기 일쑤인 그녀도 글쓰기를 통해 과거의 억압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바람대로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글이 세상 밖으로 나와 공감을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3. 가까운 이들의 마음을 알아차리다.
회사생활 10년 차쯤 날마다 버겁고 힘든 날들이 있었다. 매일 겨우 서너 줄의 메모에 가까운 일기를 남겼다. 몇 달이 흐른 후 읽어내려가다가 내가 종일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날들 속에 나를 웃게 해주던, 나의 목소리를 듣고 염려해주던 이들이 보였다. 그들 덕분에 순간순간 웃을 수 있었고 행복하기도 했구나! 그 짧은 기록 덕분에 나는 여전히 쓰는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 같다. 힘들다고 생각했던 시간 속에 숨은 행복한 순간들을 기억하고 싶어서.
4. 나만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이토록 다정한 공부』의 서문에서 김항심 작가는 내 몸과 삶을 통과한 이야기만이 다른 이들에게 단단한 힘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늘 품고 있다고 했다. 올해 여름 들었던 질병서사 포럼에서 패널들은 발화의 중요성에 관해 이야기했다. 각자의 질병, 각자의 고통은 개별적인데 발화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고. 발화를 통해 세상에 존재를 알리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도 있다. 암 환자가 돼보고야 알았다. 암환자라고 다 같지 않다는 걸. 워킹맘, 전업주부, 비혼주의자, 성폭력 생존자, 평생을 질병과 함께 사는 이들의 이야기가 세상에 나온다면 비슷하고도 다른 삶에 대한 공감대가 생기고, 다양한 목소리가 커질수록 사회의 표준 치를 바꿔나갈 힘, 연대의 끈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각자 다른 삶을 살아가고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다. 세상에 글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굳이 나까지? 글을 잘 쓰지 못하는 데 꼭 써야 하나 싶겠지만 누군가에게 보일 글을 쓰지 않아도 좋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때와 지금의 나는 어떻게 다른지, 기록해보는 거다. 올해 지인들과 주고받은 문자, SNS에 남긴 글로 올해를 정리해보면 어떨까? 당장 올해가 아니라도 내년, 2024년 당신이 쓴 글로 한 해를 돌아보는 경험을 한다면 당신도 계속 쓰는 사람이 될 거라 믿는다.
너를 통해 행위로 번역되는 생명력이, 삶의 동력이, 활발함이 존재해. 너는 언제나 유일한 너이기 때문이고, 이런 표현은 고유하지. (대니 샤피로,『계속 쓰기 : 나의 단어로』)
* 해오름 독서회원들의 동의를 받아 인용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