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소식지
[민우통신문 2023-4호] 편견 없는 일상에서 당당한 금지를 만나다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3-12-15
- 조회 수
- 268 회
편견 없는 일상에서 당당한 금지를 만나다
예지책방 대표 차예지
‘금서’란 무엇일까?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출판이나 판매 또는 독서를 법적으로 금지한 책.
금서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시대에 따라, 지도자에 따라 달라지는 양상을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 때는 민족의 얼을 해치기 위해, 독재정권 시절에는 국민들을 쉽게 다스리기 위해 책을 금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금서들은 왜 금서가 되었을까?
책방을 운영하며 처음 ‘금서’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2020년 여성가족부가 선정한 ‘나다움’ 도서가 논란이 되었을 때다.
의원 중 한 명이 특정 도서들이 노골적으로 성을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극우성향의 유튜버와 맘카페가 거들고 일어났다.
결국, 여성가족부는 전국의 학교에서 이 책들을 회수하며 일은 일단락시켰다.
하지만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늘 그렇듯 사회에 필요한 책이면 논란의 중심에 있든 없든 책방 전면 서가에 두고 판매했다.
오히려 책을 전면에 꺼내두자 성관계나 동성애에 대해 아이들부터 교사들까지 편하고 솔직하게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비슷한 일은 최근에 또 있었다.
일부 학부모단체가 120여 종의 책을 서가에서 퇴출해달라며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이 책의 목록에는 일본 위안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꽃할머니]도 속해있어 충격적이었다. 책 제목이 동성애를 옹호하는 것 같다며 기분이 나쁘니 환불해달라거나 상담실에 둘 책을 추천해달라면서도 젠더 관련 책은 제외해 달라는 등 책방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다. 학교 도서관에 생리 관련 책을 두었다가 학부모들의 민원에 서가에서 빼야 했던 경험담을 들려주시기도 했다.
불현듯 유럽 여행 중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공공 도서관에 갔을 때 봤던 서가가 떠올랐다. 성교육 관련 도서들을 연령별로 큐레이션 해둔 것이었다. 출간된 지 30년 이상 된 책도 있었고 얼마나 많이 읽혔는지 표지가 상해 비닐로 감싸둔 것도 있었다.
그들에게는 가족과 함께 도서관에 와서 이 책들을 빌려 가는 것이 일상인 것이다.
편견 없는 일상을 꿈꾸며 그림책 하나를 소개한다.
[그래도 넌 내 친구] - 제시카 월턴 글, 두걸 맥퍼슨 그림, 황진희 옮김, 여유당 출판사
[그래도 넌 내 친구]는 두 친구가 등장한다. 에롤과 토마스는 함께 자전거도 타고, 나무집에서 놀고, 차를 마신다.
어느 날, 우울해 보이는 토마스에게 에롤이 무슨 일이 있냐고 묻자 토마스는 ‘진짜 나’로 살아가고 싶다며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에롤이 자신과 친구를 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말이다.
하지만 에롤은 토마스의 고백에도 흔들림 없는 우정을 보여준다.
그림책은 두 친구를 성별로 명명하지 않는다. 오직 그림에서 파란 리본을 상징물로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우정에는 성별이나 성 정체성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두 친구의 이야기처럼
‘금’지되어 읽혀지지 못했던 책들이 당당하게 서가로 ‘금’의환향하는 날을 꿈꿔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