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소식지
[2022-12 광주여성민우회 민우통신문] 회원 칼럼 " 책 <소란스러운 동거>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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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작성일
- 202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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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8 회
<소란스러운 동거>를 읽고
광주여성민우회 회원 김진희(무도)
이 책을 선물 받은 건 지난 4월, 나는 손가락 염증으로 골절환자들이 가득한 병동에 입원해 있었다. 일시적 장애 혹은 계속 장애인으로 살아야 할 사람들이 있는 곳. 고작 손가락 하나 때문에 종일 항생제 주사를 맞고 있을 뿐이었지만 이동식 주사대를 끌고 다녀야 했다. 병원 앞 편의점을 가려고 해도 울퉁불퉁한 여러 장애물 때문에 가는 길이 순탄치 않았고 씻는 것도 화장실 출입도 불편했다. 휠체어에 의지한 환자들은 장애인 화장실에서 볼일을 봐야 했고, 간병인이나 보호자를 동반해야 씻을 수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전장연)의 지하철 출근길 시위가 계속 되던 그때, 이 병동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전장연의 주장을 자기들의 이야기로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저자는 나의 회사 후임이다. 우리 회사의 첫 장애인 사원으로 입사했었고, 그녀가 페이스북에 이 책의 초반내용들을 올렸을 때 함께 있을 때 묻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이 있어서 그 글들이 계속 연재되기를 바랐고 책이 되어 나오니 반가왔다.
저자는 뇌성마비 장애인이자 기독교인, 연구자로 산다. 사회가 제시하는 시스템 안에 안주하기보다는 본인이 하고 싶어하는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싶어하는 사람이다. 어릴 때부터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서 자신을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 의문을 갖기도 하고 자신만의 다짐을 하면서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나갔다.
그녀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로 우리 사회를 나누는 대신 시민들의 인간됨의 다양한 결이 존중받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상상하고, 그 필요에 대해 목소리를 계속 내는 사람으로 살고자 한다. 기독교인으로써 교회 안의 장애인, 성소수자 배제에 목소리를 내고 장애여성모임에 나가 장애학을 공부하고 질병춤 모임의 일원으로 아픈 사람의 말을 쌓아가는 작업을 함께 해가고 있다.
저자는 30대가 되면서 찾아온 몸의 통증으로 병원을 찾았을 때 '일을 그만두라'는 얘기를 들어야했다. 어릴 때 주기적으로 다니던 재활병원에 가서야
"절대 쉬지 마세요. 일상을 유지하세요."
라는 말을 듣고서커다란 위안을 받았단다.
사실 진료실에서 내가 받는 것은 약보다 더 긴요한 것이다. 의사는 일이 많아서 힘들다는 내 말에 그저 고개를 끄덕거려 줌으로써,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생활인이자 사회적 역할을 감당하는 시민으로서 나를 존중한다. 관절염이 있어도 나는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을 나이라는 것도 알아준다. 나는 아파도 꼭 일상을 유지하라고 당부해 주는 그의 말에서 건강 이외의 내 삶의 다양한 결 역시 소중하다는 확신을 재확인한다. 그의 말은 진통제를 먹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놓지 않겠다는 내 의지의 외부적 근거가 되어준다.
<서로 돌보는 동료 시민> 232~233p.
전장연의 지하철 출근길 시위, 요즘의 핫 이슈 <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장애인도 이동할 권리, 일할 권리,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사람, 여느 사람들처럼 삶의 다양한 결을 가진 소중한 존재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게 아닐지.
동료 장애인들은 무례한 사람에겐 대답보다 질문을 던져야 함을 알려 주었다. 정말이지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정상' 범주에 속한 사람들만이 질문할 권리를 독점해 왔다. 하지만 수천수만 가지 색을 가진 사람들에게 '왜 너는 우리와 같은 색이 아니냐'고 묻는 사람은 눈앞의 무지개를 즐기는 법을 익히지 못한 사람이다. 무지개를 풍성하게 해 줄 새로운 색을 지닌 사람에게 던져야 할 질문은 오히려 '우리가 당신을 위한 자리를 어떻게 마련할 수 있나요? 여야 할 것이다.
『소란스러운 동거』 ,<질문을 바꿔 보겠습니다>, 13p.
건강한 사람을 표준으로 하는 사회시스템은 틈이 많다. 일시적으로라도 그 틈에 끼이는 순간 우리는 소수자가 되고 사회적 시스템의 보호 밖으로 밀려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서로의 필요로 연결된 사회에서 덜 과로하고 더 인간적인 환경에서 일할 수 있는 사회, 더 평등한 문화가 만들어져서 서로의 인간됨을 지켜줄 수 있는 사회를 위해 기도하는 그녀의 바람이 이루어지자면 그녀도 우리도 수많은 이야기를 나눠야 할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