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소식지
[2022-12 광주여성민우회 민우통신문] 회원 칼럼 " 「다섯 번째 방」, 터져나오는 우리 모두의 성장투쟁기"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2-12-28
- 조회 수
- 451 회
「다섯 번째 방」, 터져나오는 우리 모두의 성장투쟁기
최민서(원더)
“69세 두딸을 둔 엄마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뭉클했어요
지난 세월의 나의 삶이 생각나서 뜨거운 눈물을 한없이 흘렸네요
딸이 아빠에게 따지는 걸 보니 내 속이 후련했어요”
지난 제13회 광주여성영화제 「다섯 번째 방」의 GV 오픈채팅방에 남긴 관객의 감상 중 하나이다. 투박한 몇 줄의 글에서 이 영화를 보신 분의 마음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영화가 끝나고 GV 오픈채팅방에는 영화에 대한 감상과 질문들이 터질듯이 올라왔다. 「다섯번째 방」은 말하고 싶게 하는 영화다. 나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를.
효정은 뒤늦게 공부하여 프리랜서 상담사가 되었다. 시가에서 더부살이를 한지 20여년만에 처음으로 자기만의 방이 생겼다. 시어머니가 자신이 사용하던 큰 방을 효정에게 내어준 것은 효정이 무능한 남편을 대신하여 경제적인 가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방이 생겼지만 효정은 마음이 편치 않다. 상담 중에도 벌컥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남편 때문이다. 효정은 좀 더 독립적인 공간인 2층으로 방을 옮기고 싶다. 전찬영 감독의 「다섯번째 방」 은 이렇게 시작한다.
효정은 순종적인 아내의 역할을 바라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는 양성평등교육원 폭력예방강사로 교육과 상담을 하고 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 속에서 효정은 분노하고 자책한다. 그리고 성장하고 투쟁한다. 마침내, 효정은 다섯 번째 방을 갖게 될까.
사실은 저 69세 관객은 내 엄마이다. 엄마와 나에게는 아주 오래전에 말하지 못 하고 꾸욱 눌러 삼킨 밤들이 있었다. 그 밤이 지나고 아침이 되면 같은 상처를 가진 우리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낮을 살아내었다. 엄마는 내가 수능시험을 치룬 그 해 겨울에 나와 동생을 데리고 집에서 나왔다. 엄마 나이 43세. 딱 지금의 내 나이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가정폭력이 우리 집만의 개인사나 불행이 아닌 가부장제와 젠더에 기반한 폭력이며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임을 알게 되었을 때, 나의 아버지라는 사람이 괴물이 아니었음에 안도했다. 참 아이러니하지만, 그랬다.
나 뿐 아니라 많은 관객들이 때로는 효정, 때로는 딸의 시선에서 많은 부분이 교차될 것이다. 우리 모두의 성장투쟁기가 될 것이다. 「다섯 번째 방」은 전찬영 감독이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첫 장편 다큐멘터리다. 제13회 광주여성영화제의 캐치프레이즈인 ‘이기는 목소리’에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얼마전 부산독립영화제에서 이 영화의 대상 수상 소식을 들었다. 가까운 시일 내 극장 개봉관에서 다시 한번 이 영화를 마주할 날을 손꼽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