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소식지
<2022-07 광주여성민우회 통신문> 칼럼 "복날의 비건을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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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리자
- 작성일
- 2022-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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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7 회
광주여성민우회 회원 포키(이경아)
우리나라는 생일날엔 미역국, 동짓날엔 팥죽처럼, 일 년 중 가장 더운 기간인 삼복(三伏)에는 열을 내는 음식으로 더위에 지친 몸을 회복하는 풍습이 있다.
따뜻한 기운을 주는 수많은 음식 중에서도 삼계탕은 단연 복날의 1등 상품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보양식을 먹는 날’로 의미가 확장됐지만, 여전히 복날이 포함된 7월에는 닭의 도살량이 급증하고, 7월 한 달에 도살된 닭의 수만 10만 마리 이상이다. 심지어 이는 사육 과정에서 태어나고 죽는 수많은 병아리와 닭의 수는 제외한 도살량만을 계산한 수치이다.
어느덧 민우회에 입사한 지도 3년 차, 나의 비건 지향인 선언 시기와도 같다.
삼겹살엔 소주, 치킨엔 맥주, 풀떼기만 한가득한 밥상을 볼 때면 먹을 것이 없다고 툴툴대던 내가, 더는 인간이라는 이유로 다른 비인간 동물들을 착취하며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민우회를 만나기 전, 당시 페미니스트 친구에 목말라 있던 나는 SNS상에서 수많은 페미니스트를 만났다. 내가 페미니즘을 접했던 것도, 탈코르셋 운동을 하게 된 것도, 민우회 인턴을 지원하게 된 것까지도 모든 시작은 SNS였다. 그렇게 또 우연히 ‘비건 지향’이라는 단어를 접하고 관련된 책을 읽고 일주일도 안 돼서 비건지향인으로 살기로 마음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모든 것들은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어느 하나도 떼어 낼 수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연결.
운이 좋게도 ‘자연과 인간이 조화로운 세상을 위해 기꺼이 불편해지기’라는 가치를 가진 민우회 내에서 ‘비건 지향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육식을 강요하지 않았고, 모든 삶의 방식을 존중했다. 그런데도 나는 조금씩 해이해졌고, 그 원인은 나였다. 당이 떨어진다는 핑계로, 내가 산 것이 아니라는 핑계로, 남이 먹다 남은 음식물이 쓰레기가 되는 것을 막는 것이라는 핑계로 초콜릿이나 과자 같은 ‘먹고 싶은 것, 먹을 수 있는 것’은 먹었다.
물론 세상에 완벽하고 무결한 페미니스트가 없듯, 비건지향인도 마찬가지다. 한 명의 완벽한 비건보다 여러 명의 불완전한 비건이 낫다는 것에도 동의한다.
계속 해이해지기만 한 것은 아니다. 광주여성민우회 소모임 ‘페미구구단’(페미니스트인 우리가 지구를 구한단!) 활동을 통해 기후위기와 탈성장, 가부장제와 자본주의, 그와 연결된 여성과 비인간 동물과 자연의 박탈된 권리들까지, 많은 것을 나누고 배우고 있다.
6월에는 투명 방음벽을 통과하려다 죽는 새들을 살리기 위한 점을 붙이는 캠페인에 참여했고, 다가오는 8월 6일에는 영화 ‘군다’를 함께 보는 저녁영화제를 기획 중이다.
‘정상’과 ‘정상이 아닌 것’으로 나누어 차별하고 착취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
백인이 아닌 인간, 남성이 아닌 인간, 더 나아가 인간이 아닌 비인간 동물 존재들까지.
페미니즘을 알게 된 후, 그동안 내 권리를 박탈당해왔다는 것을 깨달았고 내가 나로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찾기 위해 노력해왔다.
내 권리를 박탈당해왔다고만 생각했으나 나 역시도 다른 대상의 권리를 박탈해왔다.
그 사실을 알면서도, 이 착취 구조에 계속 동참하는 것은 결국 나에 대한 착취를 허용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나는 페미니즘을, 비거니즘을, 기후위기를, 탈성장을, 가부장제를, 이와 연결된 모든 것들을 알기 전으로는 다시는 돌아갈 수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우리가 평등한 삶을 희망한다면, 우리 역시 평등한 삶을 실천해야한다.
돌아오는 말복, 8월 15일에는 아무도 해치지 않는, 아무도 죽이지 않는, 그 누구의 권리도 빼앗지 않는 비건 복날을 맞이하길 바란다.
비거니즘(veganism): 비건(vegan)이 사는 삶의 방식. 비인간 동물 섭취를 반대할 뿐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비인간 동물 착취에 반대하는 생각. 동물 실험에 반대하고, 모든 동물성 식품을 먹지 않고, 입거나 쓰지 않는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을 존중하고자 하는 실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