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우소식지
[민우통신문 2024-2호] 항심책방
- 작성자
- 관리자
- 작성일
- 2024-08-28
- 조회 수
- 137 회
순례길에서 읽은 책
김항심 작가가 세 번째 산티아고 순례길 900km에서 읽은 사랑과 성장에 관한 책들
산티아고 순례길 900km를 걷고 왔다. 이번의 순례는 세 번째, 남편하고 걷는 길이었다. 테마는 깊이 있는 성장과 사랑, 이 두 가지를 품고 걸었다. 내가 교육의 공간에서 말하고 있고 더 잘 다루고 싶은 주제가 ‘성장과 사랑’이다. 왜 산티아고 순례길을 자꾸 걷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나만의 방식인데 몸으로 배우는 날것의 시간이 너무 좋아서다. 새벽부터 낮까지 하염없이 걷고, 오후의 시간은 맛있는 걸 먹고 쉬고 책을 읽으며 보냈다. 이번 순례길은 남편과 가서 책 읽는 시간이 많이 줄긴 했다. 책은 전자책으로 읽다 보니 천천히 조금씩 읽게 된다. 이 방식 또한 순례길에서만 경험하는 거라서 충분하게 즐긴다. 내가 읽은 책 중 두 권의 책을 소개해 본다. 이번 순례길의 테마에 맞춤한 책이었다.
『여자를 위하여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에 보면 옛날 미국 남부 켄터키 지역에는 책을 배달해 주는 프로젝트가 있었단다. ‘북우먼(book woman)’이라고 불리는 여성들이 산간 외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움직이는 도서관의 역할을 해줬다는 거다. 워낙 광활한 땅이라 말을 타고 넘어도 며칠은 걸리는 산을 넘어 책을 전해주는 존재라니! 순례길 걸을 때 이 ‘북우먼’이라는 옛날의 존재가 계속 내 곁에서 함께 했다. 책을 전한다는 건 다른 세계를 건네는 일인 거다. 산골의 작은 마을에서 작은 존재로 살던 사람들에게 다른 세계가 있음을, 다른 존재가 될 가능성을 손에 쥐여 주는 일의 숭고함을 오래 품고 있었다.
내가 글을 쓰고 싶은 이유, 강의를 잘하고 싶은 이유는 ‘다른 존재가 될 가능성’의 기쁨을 전하고 싶어서다. 내가 하는 일이 ‘북우먼’의 일과 같은 거다. 험한 산을 넘고, 산에서 만나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해내야 하는 일을 그들이 그토록 용감하게 해냈듯이 나도 마음과 몸의 경계를 가뿐하게 넘어가며 그 용감한 일을 잘 해내고 싶다는 다짐을 이 책을 읽는 내내 했다. 언니라고 소리쳐 부르고 싶은 매력적인 존재들이 아주 우르르 쏟아지는 책이다. 깊은 성장을 이뤄낸 언니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책을 품고 순례길의 시간을 통과했다.
사랑에 대한 기깔난 책을 쓰겠다는 게 나의 꿈이다. 사랑에 관한 매력적인 책이 별로 없다. 읽고 싶은 책이 세상에 없다면 방법은 하나, 내가 쓰는 것이다. 『누구나 세 가지 사랑을 한다』에는 사랑에 관한 내 생각과 겹치는 부분이 있어서 관심 있게 읽었다. 사랑은 내 앞의 존재가 성장할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일이라는 정의, 그러려면 자기 성장과 자기 돌봄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날마다 성찰하고 실천하면서 키워가야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내가 딱 해왔던 말이고 더 세련된 문장으로 키워내고 싶은 정의다. 순례길을 남편과 걸으면서 몸에 새기고 싶었던 것도 이런 ’사랑‘이었다. 내 몸을 통과시키지 않은 말은 텍스트 속의 마른 문장만큼이나 공허한 것임을 알기에, 성장을 향해 날마다 닦아내는 사랑이라는 것을 걷는 것을 통해 해내고 싶었다.
1. 여자를 위하여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이라영, 문예출판사, 2021.
2. 누구나 세 가지 사랑을 한다, 케이트 로즈, 흐름출판, 2021.